[Interview] 간절함이라는 용기

김예지 | <저, 청소일 하는데요?> 저자, 일러스트레이터


김예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요조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라는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담담하게 필요해서, 라고 말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지금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한국이라는 오지랖 사회에서 지금의 상태까지 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귀하다. 그녀의 책이 사랑 받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청소일을 하면서 일러스트 그리는 김예지입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을 썼는데, 요즘은 책 관련해서 강연도 하고, 소소하게 책 삽화 외주작업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책에서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당황한다고 하셨어요.여전히 그런가요?

네, 여전히 그래요. 당연히 제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이 더 많잖아요. 새롭게 알게 된 분들에게 어떻게 얼마나 설명을 해야 하나 생각하게 돼요. 숨길 일은 아니지만요. ‘엄마랑 청소일 하면서 일러스트 그립니다.’ 정도로 얘기해요.


책이 벌써 4쇄예요. 축하드려요. 책 관련한 행사들 때문에 자는 시간이나 자유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았나요?

지금은 월수금만 청소일을 빡빡하게 하고 있고요. 화목토일 4일은 쉬어요. 아직은 충분히 병행이 가능한 정도예요. 늘 청소일은 조금 줄이고 싶지만요. (웃음)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하시고 그림이라는 꿈을 좇는다는 모토는 여전하신 거죠?

네, 여전해요. 당분간 계속 그럴 것 같아요.


책에 청소일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상담받으신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정작 필요하더라도 선뜻 진입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원래 남들 잘 안 하는 것을 잘하시는 성향이신가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런 성향도 원래 있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부모님이 무언가를 못하게 한 기억이 없어요. 청소와 상담 둘 다 결국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일인 것 같은데요. 저도 영향을 안 받지 않아요. 꽤 받는 편인데, 저를 먼저 생각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제 인생이니까요. 남들이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요.


책에 어머니의 대사들 중 인상적인 것들이 많던데요. 선뜻 택하지 않는 길을 가시는데 그 영향도 있어 보여요.

사실 어려서는 저희한테 관심 주실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돈 버느라 육체적으로 항상 너무 피곤한 상태셨던 것 같아요. 그냥 알아서 하라는 것이 많았죠. 지금은 여유도 생기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대부분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비교적 최근, 그러니까 좀 커서 들은 것들이에요. 모든 사람의 삶이 결국 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도 포함해서요.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꿈을 갖게 되셨나요?

제가 서양화를 전공했어요. 원래는 디자인 전공을 하고 싶었는데, 성적이 안 돼서. (웃음) 서양화를 배우다 보니 그리는 것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다만 제약이 좀 많더라고요. 재료나 도구들도 필요하고. 그래서 그리는 작업을 컴퓨터로 해보자 생각해서 시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미대를 가고 싶었나요?

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다니면서는 친구들 사진 포토샵 편집을 해 주거나 홈페이지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재밌었어요. 다른 것엔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사실 미술학원을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서 취직이 잘되는 전공을 고민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행히 방법을 잘 찾아서 미술학원을 다녔고, 그렇게 준비해서 진학했어요. 


전공이 도움이 많이 되나요?

도움은 많이 돼요. 학부 이전에는 사람을 제대로 그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처음으로 사람도 그려보고 저를 캐릭터로도 그때 처음 그려봤어요. 그게 지금 책에도 쓴 캐릭터와 유사해요. 


어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으세요?

친구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요. 그건 결국 일상적이라는 건데요.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상처럼 느껴지는 편안한 그림들인데,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그걸 참 잘 표현해 주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 김예지 작가의 그림


자신만의 그림체를 찾고 싶다고 쓰셨는데, 잘 진행중인가요?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 같다고 느껴요. 처음에는 정말 수시로 바뀌었거든요.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래도 누군가 그림을 보고 코피루왁(김예지 작가의 작업명) 작가가 그렸네, 하는 느낌은 줄 수 있다고 스스로는 생각해요. 가고 싶은 그림의 방향성은 좀 잡은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림체 잡아가는 과정이 궁금해요. 그릴 때 편한 스타일과 꼭 구현하고 싶은 스타일 중 선호가 있으세요?

저는 무조건 그릴 때 편안한 쪽이요. 편안하고 재미있게 조금이라도 더 그리는 것을 선호해요. 조금이라도 더 그리면 더 늘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제 성향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점점 바빠지시는데, 병행이 더 힘들어지지는 않나요?

엄마한테 매일 줄이자고 하소연해요. (웃음) 그래도 월수금 무리해도 화목토일 쉬니까 가능해. 아니라면 절대 못했을 것. 회사 다니면서 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생계와 그림, 그러니까 밥과 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에 청소가 ‘완벽하다’는 표현까지 했어요. 어떤 점들이 그런가요?

우선은 당연히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이고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더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만화의 소재가 되어주었잖아요. (웃음) 저에게는 더욱 감사한 일이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지키는 일의 신념이나 원칙이 있으세요?

시간 약속은 지킨다는 원칙이요. 사실 이번 책을 낼 때는 편집자님께 양해를 구해서 조금 기간을 조율하고 길게 갖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약속한 것을 지킨다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 김예지 작가의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

출판 후에 외주 작업 들어오는 횟수는 늘었나요?

아주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들어오고 있어요. 주로 책 삽화 작업 위주로요. 그런데 아직은 일러스트 작업보다는 강연 의뢰가 더 많아요. 처음엔 제가 강연을 한다는 것이 잘 납득이 안 갔어요. 제가 무슨 말을 다른 사람들한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요. 그래도 어떤 쓰임새로든 제가 쓰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루트임팩트에서 준비하는 컨퍼런스(링크)에서도 패널로 나오실 예정이죠? 잘 부탁드려요. (웃음)

네, 최근에 루트임팩트 분들과 사전 미팅을 진행하고 있어요. 많이들 와 주시면 좋겠네요.


꼭 맡아봤으면 하는 일러스트 작업이 있나요?

맡아봤으면 싶다기보다는 꼭 하고 싶은 작업은, 저만의 색으로 그린 일러스트들을 모아서 일러스트집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그림만 봐도, ‘아 코피루왁이 일러스트집을 냈구나’하고 바로 알아봐 줄 수 있는 작업물이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롤모델이 있나요?

어려서부터 스노우캣을 많이 좋아했고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마스다 미리도 좋아하고요. 전 이제 그림체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그 둘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받아갈 것 같아요.


보통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네이버 그라폴리오나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독립출판을 선택하셨어요.

사실 말씀하신 곳들에 다 많이 올려봤는데 잘 안 됐어요. (웃음) 어떻게든 나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독립출판을 시도하게 된 거죠.


그림 그릴 때 즐거우시죠? (웃음)

즐거움 반, 스트레스 반이에요. 완성작이 마음에 들면 당연히 즐겁고요. 그릴 때도 재미있어요. 반대로 자괴감에 빠지는 날도 많아요. 이렇게 못 그리는데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요. 그림은 저에게는 늘 애증의 대상인 것 같아요. 


점차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있어요. 꿈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오지는 않으세요?

오히려 청소를 더 빨리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이 일은 너무 고마운 일이고 장점이 많지만,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있지는 않아요. 그에 반해 그림은 여전히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나는 대상이고요. 어서 그림만으로 생계유지가 되면 좋겠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성장한다는 느낌'은 언제 느끼세요?

제가 원하는 그림체가 조금씩 손에 잡혀가는 느낌이 들 때요. 표현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그림체로 더 잘 표현해가고 있구나 싶을 때 성장한다고 느껴요. 신기하게 제가 만족한 작업을 올릴 때 SNS에서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요. 좋아요 수도 다르고요. (웃음)


일러스트로 추구하는 것의 키워드를 하나만 뽑으신다면요? 

공감이요!



책에 직업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청소일을 하시면서 관점의 변화가 있었나요?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그전까지는, 어떤 일을 할 때 굳이 전후 사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청소일 시작하면서는, 저 스스로도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보니까 설명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이 사회에서 직업이라는 것이 나를 생각보다 더 많이 대변하는구나 느꼈어요. 그 전엔 오히려 직업은 직업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직업은 나를 말해주는 많은 것들 중 하나란 생각을 했고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이 많이 됐어요.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직업과 분리된 그 사람 자체에 더 집중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요?

제 기준에서는,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떳떳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일이라면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약속의 대가로 떳떳하게 보상을 받는 모든 일이요.


청소일을 하면서 지키는 것?

엄마랑 함께 하는 일이잖아요. 저는 해이해질 때가 많은데, 엄마는 약속을 늘 강조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대가로 정당하게 돈을 받아야 한다고. 어쩌면 제 직업관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메인 잡(Job), 세컨드 잡(Job)에 대한 의식이 있으세요?

저는 늘 지금 메인잡은 청소라고 생각해요. 현재로서 제 생계를 책임져주는 일은 청소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물어볼 때도 ‘저 일러스트레이터예요'라고 하지 않고 ‘ 청소하면서 일러스트 그립니다'라고 하는데 그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함부로 누군가에게 저 같은 선택을 해 보라고는 말 못 해요. 하지만 자기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 있다면 그것이 그 직업인 건지, 아니면 그 분야의 커리어를 쌓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건 꼭 직업과는 관련되지 않은 무언가인지 잘 깊게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꼭 직업으로만 다가가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라면, 그에 다가가는 방법을 더 넓게 보고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Editor 김와이   |  Photo  한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