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청소년들의 나쁜 기억을 지우다

이준호 | 나쁜 기억 지우개 대표

이준호님 헤이리슨 바로듣기

팟빵    오디오클립    애플 팟캐스트



청소년들의 고민 나눔 서비스를 운영 중인 이준호님
#이준호님의 자세한 프로필이 궁금하다면? (문제적 프로필 듣기)

무한도전, 즐겨 보셨나요? 저는 종영을 아쉬워했던 수많은 애청자 중 한 명이었어요. 이번 주 인터뷰에서 무한도전이 언급되어 아주 오랜만에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편을 다시 봤습니다. 당시에도 흥미로운 컨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저는 특히 윤태호 작가님의 말들에 많이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이번에 보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고백하는 한 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요. 그냥 걷다가 돌을 맞기도 했고요. 결국 고등학교 때 자퇴와 가출을 하는 과정에서 부모님과도 심한 갈등이 있었다며, 그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을 안고 있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해 아직도 약을 계속 먹는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 경험을 남긴 장본인들의 인지와는 무관하게, 그 경험이 이 분 인생에 미친 영향력의 총합은 여전히 커지고 있는 거죠.

이 분 이야기 중, 그땐 정말 아무도 없었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너무 힘든데 말할 곳도,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결정권도 없는 상황이 주는 막막함은 제가 가늠하기는 어려운 크기였겠죠.

이번 주 헤이리슨에서는 청소년들이 고민을 나누는 앱 서비스인 나쁜 기억 지우개의 이준호 대표를 만났습니다. 나쁜 기억 지우개는 작년 고객 데이터와 관련된 큰 논란이 있었는데요. 논란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로 어떻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많이 읽고 들어주세요.


ps 헤이그라운드 멤버이기도 한 옐로우독 대표 제현주님이 쓴 책 <일하는 마음> 중 ‘고통은 여기 두고 가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은 30년 동안 최소 156명의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온 래리 나사르에게 최고 175년형을 구형한 로즈마리 아킬라나 판사에 대한 글입니다. 아킬라나 판사는 이미 유죄 판결이 난 이후 양형심리에서, 나흘에 걸쳐 150명이 넘는 모든 증인이 원하는 만큼 증언할 시간을 주었다고 해요.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경청하고, 감사와 칭찬과 격려를 건넸다고 합니다. 아킬라나 판사는 이를 통해 전 세계가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어서 저자는 이런 유의 사건에서 관심을 두어야 하는 순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가해자의 생성과정을 이해하는 것보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 그들의 깊은 상처와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주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어쩌면 이 글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글이 아닐까 합니다.




서비스 이름이 나쁜 기억 지우개입니다. 어떻게 지은 이름인가요?

원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익명 SNS를 만들어보려고 개발하고 있었어요. 막 개발을 배우고 나서라 아주 가벼운 기획이었어요. 게시판인데 글을 쓰면 하루가 지나서 자동으로 삭제되는 컨셉이었죠. 출시를 앞두고 있을 때 마침 무한도전에서 ‘나쁜 기억 지우개' 편을 하더라고요. 젊은 청년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니, 고민을 술술 얘기하는 모습을 봤어요. 저희가 하려던 것도 비슷한데, 그럼 아예 고민에 초점을 맞춰보자고 생각했죠. 이름을 써도 되는지 알아봤더니 가능하더라고요. 


나쁜 기억 지우개는 어떤 서비스인가요?

나쁜 기억 지우개는 청소년들의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것을 미션으로 하는 모바일 앱 서비스입니다. 청소년들이 내 속에 있던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을 때 와서 공유하고 위로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죠. 고민을 나누는 방법은 게시판, 채팅, 라이브 오디오 스트리밍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더 민감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익명을 기본으로 하고요. 글은 하루가 지나면 자동으로 지워지는 것이 기본 설정입니다.


‘메이트'라는 제도가 있다고요.

한 유저가 게시판에 고민 글을 올리면 다른 유저들이 위로의 댓글을 달아주는데요. 글쓴이가 그 댓글이 도움이 됐다고 느끼면 ‘고마워요' 버튼을 누를 수 있습니다. ‘고마워요' 버튼을 100회 이상 받으면 ‘메이트’ 자격이 주어지고, 1대 1 채팅과 오디오 라이브 스트리밍은 메이트가 되어야만 사용 가능합니다. 최소한의 유저 검증 과정인 거죠.


메이트들이 활동을 열심히 하게 하는 장치도 있나요?

메이트로 활동하는 분들이 약 20,000명 정도 되는데요. 스스로 느끼는 내적 만족감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어요.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앱을 설치하고, 다른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으면, 스스로 또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이 큰 것 같아요. 그 경험이 너무 좋다는 리뷰도 많고요. 그 외에 부차적으로 아프리카 TV의 별풍선처럼 하트를 구매해서 선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정말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였다고 하셨어요.

맞아요. 누군가 써주기만 해도 신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출시했어요. 무한도전에서처럼 청년들이 반응할 거라고 생각해서 지인 홍보 정도만 했는데, 첫 6개월은 거의 반응이 없더라고요. 함께 만든 팀에서는 다른 서비스를 하자고 했는데 저는 좀 아쉬웠어요. 이 안에서 다양한 고민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유저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면서 기능을 더해갔더니 다운로드가 조금씩 늘더라고요.


예상과는 다르게 청소년 유저가 급증했다고요.

네, 신기하게도 10대들이 많이 쓰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스마트폰 앱에 친숙하고 적극적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 같고요. 2-30대의 경우도 위로가 필요한 건 같지만, 경제력이 아무래도 10대보다는 더 많으니 다른 여러 창구들을 찾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10대들은 학교, 학원, 집이 전부거든요. 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모바일 앱이 아닌가 해요.


기억에 남는 유저의 리뷰가 있나요?

가장 고마운 리뷰는 ‘이 앱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에요. 그중 특히, ‘이 앱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라고 남겨주는 분들이 계세요. 이런 리뷰를 보면 너무 고맙고 힘이 돼요. 특히 저희 서비스가 사업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더욱 그래요. 돈을 잘 벌고 있지 못하니까, 기업으로서는 잘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게 이 서비스가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하나요?

아주 다양한데요. 가장 핵심에 있는 키워드를 꼽자면 결국 사람과의 관계인 것 같아요. 친구 고민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부모와의 관계 고민이 많고요. 그 시기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시기잖아요. 짜여진 일상을 어떻게 바꿀 수가 없어요. 도피할 수 있는 곳이 정말 제한적이죠.


서비스 내에서 감지되는 위기청소년들을 전문적인 상담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도 하고 계시다고요.

서비스 내에서 가벼운 고민들을 주고받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런 경우는 서로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다만 전문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 고민들이 있는데, 그걸 저희가 직접 대응할 수는 없어요. 전문성도 없고 여력도 없고요. 그래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복지상담센터와 연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무료로 상담을 제공하는 센터가 전국에 230여 개 있거든요. 그런데 청소년들 중에 이걸 알고 방문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아주 힘든 상황에서 이걸 검색하고 찾아가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저희 서비스 같은 경우는 그래도 청소년들이 많이 쓰니까, 상담센터와 서로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안을 여러 번 했는데,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청소년 이동쉼터와는 협업을 하고 계시죠?

청소년 이동쉼터 쪽에서는 제안을 수락하셔서, 저희 앱 안에서 ‘전문가 메이트'라는 특별한 메이트로 활동 중이세요. 서울 경기 지역 청소년들이 들어오면 상단 고정으로 보이게 해 두었어요. 쉼터 쪽에서 필요에 따라 채팅 상담을 받을 수 있게 기능을 제공해드리고 있어요. 쉼터 쪽에서는 아무래도 고민을 나누러 온 친구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좋은 차별점이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는 유저들에게만 띄우는 팝업도 있다고 들었어요.

청소년들이 고민 글을 쓸 때, ‘자해'나 ‘자살' 같은 단어가 들어간 글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 경우 만약 그 친구가 위치 정보 제공에 동의를 했다면, 그 친구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상담센터 정보를 팝업으로 띄웁니다. 바로 전화를 걸 수 있게 통화 버튼도 포함해서요. 아마 그런 글을 올리는 순간이 가장 힘든 순간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통화 버튼을 누르는 횟수가 한 달에 900건 정도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충격적으로 많은 숫자네요. 상담 센터들과의 협업이 꼭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2019년에 서비스 관련하여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깊이 고려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결과라고 하셨는데요. 이번 인터뷰도 오랜 고민 끝에 하기로 하셨고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2018년 말에 한국 데이터산업 진흥원에서 지원사업 공모가 있었어요. 기업들 간의 데이터 거래를 활성화하는 취지였죠. 데이터 스토어라고 하는 오픈마켓에 등록해 두면, 서로 목적이 잘 맞다고 생각하는 조직 간에 데이터를 거래할 수 있게 열어주는 거예요. 저희는 ‘청소년들의 지역별 나이별 고민 통계’라는 데이터를 올려두었는데 이것이 이슈가 된 거죠. 2019년 1월에 서비스 내에 '너희들 개인정보가 팔리고 있어'라는 글이 올라왔고, 이용자들은 공포감에 휩싸였어요. 이후 유튜브, 언론으로 퍼졌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도 받았습니다.


그때의 대응에 대해서 후회하는 부분이 있으시다고요.

유저와 소통을 해 오던 창구를 통해 정말 많은 분들이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셨어요. 물론 사과를 하긴 했는데, 그때의 제 마음은 사실과 다르게 알려지는 부분을 해명하려고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배신감을 느끼고 화가 나 있는 유저들 마음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는데요.


아무나 데이터를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결과적으로 데이터가 판매된 것은 아니었고, 개인 식별은 어려운 데이터였던 거죠?

네, 그럼에도 돌아보면 유저 입장에서 충분히 배신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유저였어도 그랬을 것 같고요. 생존, 수익모델 찾기라는 생각에 급급해서 내린 저의 잘못된 결정이었어요. 유저들에게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고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그땐 그저 익명화된 데이터이고, 저희가 생존해야 유저들도 계속 이 서비스를 무료로 쓸 수 있으니까 좋은 선택일 거라고 저 혼자 임의로 판단해 버렸던 것 같아요.


서비스를 중단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보이는데요. 그래도 1년 넘게 계속해 오고 계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신 걸까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유저들의 반응에 힘을 얻어서 해 왔는데 유저들이 등을 돌리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주위에서도 계속할 수 있겠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떠냐 하는 제안이 많았고요. 그런데 저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가 원래 가져가고자 했던 미션을 증명하려면, 계속해 나가는 결정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사업의 본질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만족인 거죠. 최근 나쁜 기억 지우개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유저들이 이 서비스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있어요.


논란 이후 서비스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모든 업무 중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1순위로 두어요. 모든 데이터는 일주일만 보유하고 삭제합니다. 그리고 서비스의 큰 결정이나 업데이트는 유저들에게 물어보고 진행하고요. 최근엔 언론에 배포하는 통계도 동의 유저들의 데이터만 갖고 작성하려 해요. 이렇게 배포하는 데이터는 보통 ‘요즘 청소년들이 많이 하는 고민'과 관련한 것인데요. 이것도 배포를 고민하다가 결국 배포하기로 한 건, 알려지지 않으면 개선이 없으니 공익적인 목적으로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앞으로의 나쁜 기억 지우개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유저들이 어떻게 서비스를 쓰는지 잘 들여다보고 있는데요. 살펴보면 이들이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고민, 부모에게 털어놓는 고민, 혼자 삭히는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그중 혼자 삭히는 고민을 이 서비스에 털어놓고 서로 위로를 얻더라고요. 아주 무거운 고민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고민들을 털어놓고, 그걸 잘 들어주는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 가는 거죠. 고민을 기반으로 온라인 친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있어요. 이 관계가 당연히 오프라인 친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고요. 완전히 다른 유형의 관계인 거죠. 청소년들에게 이 관계를 계속해서 잘 만들어줄 수 있는 서비스로 발전하고 싶어요. 


인터뷰에서 이준호님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클릭해서 팟캐스트로 들어보세요!

#나쁜 기억 지우개 유저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

#나쁜 기억 지우개의 미래 더 구체적 버전 📈

#이 방송을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 👂

#녹음 전날 잠을 잘 못 잔 사연? 🥱

#나쁜 기억 지우개 오디오 라이브 스트리밍이 뭔지 궁금하다면? 🎤



Interview 헤이리슨

Photo 어도러블 스튜디오, 나쁜 기억 지우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