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시민이 만드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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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이 정치에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와글 이진순님
*진순님의 자세한 프로필이 궁금하다면? 문제적 프로필 듣기

이번 주 헤이리슨에서는 ‘시민이 만드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재단법인 와글의 이진순 이사장님을 만났습니다. 한겨레에서 오래 연재하셨던 인터뷰 섹션 열림도 참 좋았고, 그중 일부를 모은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문학동네)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인터뷰의 대가를 인터뷰하려니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차세대 청년 청소년 정치 리더의 필요성, 시민들의 의견이 더 잘 반영되는 정치에 대한 고민, 한겨레를 통해 122명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와글과 이진순님의 이야기, 많이 듣고 읽어 주세요!




와글은 어떤 의미로 지은 이름인가요?

와글와글 떠든다고 할 때 그 와글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발언을 하면서 떠드는 모양새를 뜻하죠.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자산이 되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제가 옛날 사람이라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웃음) 독재 정권 하에서는 국론 통일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죠. 이론, 의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경, 불온한 것으로 여겼어요. 그런데 세상엔, 특히 인간 사회에는 100%의 정답은 없죠. 다양한 의견들이 부딪히고 깨지고 융합되면서 더 좋은 솔루션이 나오는 거잖아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생각이나 경험도 확장이 되는 거고요. 그런 와글와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담아내는 정치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영어 약자로 쓰기도 하던데요.

국제 워크숍을 할 때도 있고 해외 친구들을 초청할 때도 있다 보니 적절한 영어 풀이가 필요했어요. We All Govern Lab 이라고 붙였습니다. “We All Govern”은 “시민 모두의 통치"를 뜻합니다.


처음 시작은 스타트업이라는 형태를 채택하셨습니다. 어떤 이유였나요?

처음에도 이윤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럴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요. 다만, 스타트업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어요. 같이 공부하고 성장하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개인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면서 기민하게 움직이고 반응하는. 이런 문화를 유지하면서 시민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가급적이면 2-30대의 젊은 분들과 일하고 싶으셨다고요.

제가 소위 말하는 운동권 세대인데요. 80년대식 운동 방식 말고 다른 대안이 없을까 하는 화두를 갖고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가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경험을 했어요. 제게는 행운이었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더 유연하고 수평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조직문화를 도입해서 시민운동을 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 보니 시민사회단체가 그동안 열정적으로 고생하고 헌신해서 활동폭을 넓혀 왔음에도 조직문화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어요. 물론 제 또래의 훌륭하고 역량 있는 분들이 많지만, 그분들과 새로운 조직문화를 추구하면서 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경험이 좀 부족하더라도 새로운 실험을 같이 할 수 있는 분들과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국회톡톡'과 ‘청치펀딩' 같은 아이디어들이 나왔군요. 두 프로젝트에 대해 내부에선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목표한 만큼은 이뤘다고 생각해요. 국회톡톡은 시민이 제안한 내용을 국회의원과 공동 입법하도록 만든 플랫폼인데요. 진행 과정을 시민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했어요. 2016년 10월에 런칭해서 올해 초 국회에 정식으로 온라인 청원 사이트가 생기면서 서비스를 클로징했죠. 다양한 측면에서 시민 참여 플랫폼의 선도적 모델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청치펀딩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작했는데요. 뜻이 있는 청년들이 지방선거에 입후보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막상 막대한 선거비용 때문에 망설이고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기초단위 선거는 공식적으로 정치 후원금을 모금할 수도 없게 되어 있기도 하고요. 모으는 것은 불법이니,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돈을 빌려주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됐습니다. 12명 정도가 청치펀딩을 진행했고 그중 6명이 당선됐어요.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에 재단법인으로 전환하셨습니다. 전환 후 집중하는 영역도 조금 달라지셨다고요.

아무래도 영리를 위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에 전환하게 됐어요. 매년 세무신고할 때마다 들어가는 돈은 있는데 나오는 돈은 없는, 뭐 이런 이상한 회사가 있나 하는 얘기도 들었고요. (웃음) 아예 공식적으로 동의하시는, 공감하시는 분들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비영리 재단 법인으로 전환했어요. 그러면서 청년 청소년 차세대 리더 양성 사업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청년 청소년 리더 양성은 왜 중요한가요?

지금 국회도 그렇고 광역의회나 기초단위 의회를 봐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고령화가 심하죠. 지금의 인구 피라미드를 비례해서 대표하는 대의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그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려면 기본적으로 노장청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노장노장노장의 구조죠. 특히나 요즘처럼 시대가 급변하고, 코로나 19나 기후위기처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이슈들이 터져 나올 때는 과거의 경험과 활동력에 기반한 구상을 가진 노장년층에 의존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요. 청년과 청소년, 우리 사회의 변화 논의에 더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단순히 인구 피라미드 비중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혜영 의원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작년까지 와글 사무국장을 하셨죠. 장혜영 의원님 같은 사례가 계속 더 나와야겠군요.

네, 와글 자랑을 조금 하면요. (웃음) 최근에 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이 된 박성민 최고위원도 와글이 발굴한 청년 중 한 분입니다. 2018년에 국회 디지털 연수과정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국회가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지에 대해 디지털 민주주의적인 다양한 발상과 상상력을 갖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어요. 합숙을 포함하여 아주 밀도 높은 과정을 거친 개인 및 그룹 프로젝트를 심사해서 3명에게는 3개월의 국회의원실 인턴의 기회를 제공했는데요. 그때 선발된 사람 중 한 명이 박성민 최고위원입니다. 와글 연수의 경험이 큰 발판이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장혜영 의원 말고도 와글이 발굴한 스타들이 더 있고, 또 많은 예비 스타들이 있습니다. (웃음)


어떤 분들이 차세대 청년 리더가 되면 좋을까요?

내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어쩌다 보니 정치를 하게 됐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라는 것이 생계 수단의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안 바꾸고는 못 견딜 정도의 중요한 우리 사회의 화두가 자신에게 있는지가 중요하죠. 그걸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일종의 공인이 될 결심을 하는 거니까요. 장혜영 의원을 예로 들면, 그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한 살 아래 동생이 있죠. 16년 정도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 있던 동생을 데리고 나와 같이 살기로 합니다. 동생을 그렇게 다른 곳에 떨어뜨려 놓고 하는 자신의 모든 활동이 만족스럽지 않고 우울했던 거죠. 동생과 함께 살면서 동생뿐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이 격리되지 않고 사회로 나와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게 됐어요. 비장애인들도 당연히 완벽하지 않고, 갖가지 불완전한 요소들을 갖고 있잖아요. 그걸 사회적으로 서로 보완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장혜영 의원이 시위도 해 보고, 피켓 들고 거리도 나가보고 하다가, 어느 날 계속 뭔가를 해 달라고, 들어달라고 하는 것에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데 필요한 힘을 가지고 그걸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자리로 가고 싶다,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한 겁니다. 저는 이런 식의 정치에 대한 접근법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와글 홈페이지에 시민이 정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언급도 있고요.

대의제라고 얘기할 땐, 의견을 대신해준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항상 문제는, 물어보질 않아요. 궁금해하지도 않고요. 그러면서 마치 자신의 의견이 국민의 의견인 양 말하는 경우가 많죠. 이럴 때 국민의 의견이 이것이다 라고 끊임없이 표현하고 발화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장이 필요해요. 정당 차원에서는 정당 내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당원들을 통해 의견을 상향식으로 잘 올려낼 수 있도록 하는 절차의 정비가 필요하고요. 정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 아마 정당에 대한 회의감이 클 거라고 생각해요. 정당이라는 메커니즘이 민주주의의 아주 중요하고 건강한 동력원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번 선출되었다고 만인의 의견을 다 인지하고 대변하는 양 행세하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서는 당으로 돌아와 민심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구조를 잘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투표할 때 그 후보가 앞으로의 이슈에 어떤 결정들을 내릴지 미리 알고 하는 것은 아니네요. 요즘은 민심을 잘 파악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지도 않을 텐데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행과 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온라인 플랫폼 다 만들어 놨는데 활성화가 안 되더라, 난들 어떡하나 변명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그런 경우는 사실 사람들이, 내가 의견을 말하면 정말 들어줄 거야? 라는 생각일 거예요. 시민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그것과 따로 논다면 굳이 열 내고 시간 내서 그 장에 들어가 떠들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회의감이 강한 거죠. 공론장에서 형성된 의견을 어떻게 현실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보증, 그로 인한 시민들의 긍정적 경험이 필요해요. 


헤이그라운드가 위치해 있는 성수동과 인연이 깊으시죠?

성수동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요. 대학 때 공장활동이라고, 대학생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공장에서 일해 보는 경험을 했는데 그것도 성수동에서 처음 했어요. 자석 필통을 만드는 문구공장이었는데, 그땐 다 손으로 발로 눌러가며 만들었죠. 여차하면 산재가 생겨요. 한 친구가 졸다가 전기인두에 손을 대어 화상을 입었는데, 그때 진동하던 살 타는 냄새는 잊히지가 않아요. 식당 밥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어요. 다들 배가 고파도 식당 밥은 대충 먹고, 공장 앞에서 간식을 사 먹는 문화가 있었어요. 가게에서 파는 삼립이나 샤니 빵은 비싸서 못 먹고, 공장 전문 행상이 공장 앞으로 와요. 그러면 상표 없는 꽈배기나 도나쓰를 50원 정도에 그마저도 외상 긋고 먹는 거죠. 월급 받으면 갚고요.


직선에 의한 서울대 첫 여성 학생회장이기도 하셨습니다. 정치에 뜻이 있었나요?

그 시절 학생회장을 했다고 하면 어려서부터 야심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당장 언제 끌려가서 취조 고문당할지 모르고, 실제로 생명을 잃는 경우도 보는데 그 일을 먼 훗날 정치를 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라고 봐요. 그보다는 지금 당장 눈 앞의 현실에 대한 분노나 억울함이 주된 동력이었겠죠. 저는 전두환 정권 때 입학해서 대학 4학년까지 다녔는데, 실제로 경찰들이 캠퍼스에 상주했으니 분위기가 어땠겠어요. 여성들 중에는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친구들이 내 눈앞에서 잡혀가는 것도 보고요.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부정과 불의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데 대한 끊임없는 자기 고민을 하는 거죠. 할 수 있을까? 해야 하는데. 그래도 겁나는데. 이런 마음들이었어요.


저라면 절대 못했을 것 같은데,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그때의 일들을 신화화해서는 안 돼요. 그땐 그런 상황이니까 했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 요즘 젊은 세대에게 화염병 던져 봤냐, 감옥 가 봤냐, 이 땅의 민주주의에 얼마나 기여했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는데요. 제 생각은 전혀 달라요. 요즘 세상에 왜 화염병을 드나요. 그땐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그랬던 거죠. 기계적으로 비교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커리어의 시작은 방송작가로 하셨어요.

장학퀴즈 출제위원이라는 것을 하다가, 방송이 재미있어 보여서 점점 발을 깊이 들여놓게 됐어요. 서른 넘어서 보조작가부터 시작했는데 꽤 늦은 나이였어요. 저는 모든 게 늦어요. (웃음) 방송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제가 했던 일들은 사회에 나와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어요.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것이 없었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일선의 운동 현장에서 몸으로 체험했던 여러 현대사의 굴곡들이 다큐멘터리 작가를 하는 데는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피디들도 아마 그 점 때문에 저와 작업을 하고 싶어 했을 거고요. 방송작가 일은 재미있었어요. 물론 열악한 노동조건은 문제지만, 일 자체로만 보면 지금도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직업 중 하나예요. 피디, 작가, 제작팀이 치열하게 수평적인 토론을 하면서 작업을 해 나가는 것, 당시 한국에선 드문 환경이었죠.


그러다 마흔 무렵에 갑자기 유학을 떠나기로 하셨습니다.

방송 작가를 하면서는 정치와는 거리를 좀 두고 살고 있었는데,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당시의 386세대들이 대거 의기투합해서 정치를 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모임도 생겼고요. 저는 직접 정치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열심히 돕겠다는 생각이었죠. 실제로 2000년 총선으로 많이들 정계에 진출했는데, 그 후에 보이는 모습들이 저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어요. 당시엔 많이 힘들었어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 같은 느낌, 인간적 배신감 같은 것들이 컸죠. 이 친구들조차 이렇게 된다면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암담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을 가기로 했죠.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영어는 좀 되냐고 하길래 이제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고 답했죠. (웃음) 20년 넘게 영어랑은 담쌓고 살다가 다시 시작했으니까요. were라는 단어가 생소하더라고요. (웃음) 누군가는 미쳤구나, 그 나이에 뭘 새로 한다는 말이냐, 교수나 되겠냐 하며 말렸고요. 누군가는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아직 현상태를 유지하면서 겪어낼 수 있는 괴로움의 총량에 비해 새로운 환경에서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이 더크기 때문에, 그걸 따져보면서 머무른다 라는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들은 그걸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러면서 용기가 없어서, 의지가 없어서 라며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을 폄하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상황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죠. 지금 하는 일을 마지못해 하는 밥벌이로 규정하게 되니까. 용기를 내느냐 아니냐 종이 한 장 차이죠 사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뛰쳐나가는 것이고요. 

한겨레에서 오래 해 오신 ‘이진순의 열림' 마지막 셀프 인터뷰에 따르면, 그동안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들에게 반복적으로 ‘그럼에도 사람을 믿으세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장님은 어떠신가요?

당연히 계속 실망하고 화가 나지만, 희망을 놓을 수는 없죠. 이건 사실 선택의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 인간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온갖 논리로 저를 논쟁에서 이길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러고 나면 뭐가 남나요? 무인도에 가서 따로 살 건가요? 인간은 멸종해도 마땅한 온갖 자태를 다 보이고 있으니 혼자만 다른 종이 될 건가요? 선택의 여지가 없죠.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를 막론하고 굉장히 불안정하고, 늘 일시적인 기분에 따라 움직이고, 일관되지 못하고, 변덕스럽고 모순적인, 그런 난해하고 복잡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용기 있는 선택을 할 때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많은 순간에 비겁하게 행동하며 살아왔겠죠. 인간이 그런 거죠. 제가 인터뷰집 제목을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이라고 지은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세상에 횃불처럼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위대한 영혼을 가진 인간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위대한 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붙일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자연이나 우주에나 붙일 수 있을까. 아주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인터뷰를 했지만, 속된 말로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한 꺼풀 벗겨내면 상처와 흠집이 있고, 그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들은, 어떤 순간에 용기를 내서 짠 하고 어떤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의 순간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고,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죠. 꺼지지 않는 횃불 같은 것은 없어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각자가 간헐적으로 깜빡거릴 뿐입니다. 그런데 그걸 멀리서 보면, 뭉쳐서 하나의 빛처럼 보이는 것이죠. 99분 동안 어둡다가 1분 반짝하면 못난 존재인가, 절대 그렇지 않죠. 아직 자신이 반짝일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한 번 반짝이고 나서 오랜 빛 꺼짐의 시간을 겪고 있을 수도 있죠.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요. 다시 또 잠깐 반짝일 수도 있겠죠. 누구나 그러하듯.

인터뷰에서 진순님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팟캐스트로 들어보세요!

인터뷰를 하면 인터뷰어가 얻는 것이 더 많죠. 단…

이 분이 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어요.

인생에 대해 가장 많이 안다고 생각할 때는 10대 후반이죠 (웃음)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해 보는 경험, 추천해요!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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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있을 때 후보자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를 꼭 한다.



Interview 헤이리슨

Photo 어도러블 플레이스, 와글,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