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농인 아티스트들, 수어로 예술하다

정정윤 | 핸드스피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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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 청년 아티스트들과 수어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핸드스피크 대표 정정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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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헤이리슨에서는 핸드스피크의 정정윤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있는데, 핸드스피크 지연님의 수어 랩 영상이 자주 나옵니다. 소리는 나지 않고 영상만 나오는데, 보면서 늘 표현력이 엄청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는 정윤님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윤님과의 이야기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많이 듣고 읽어 주세요!




핸드스피크는 어떤 일을 하나요? 

훌륭하고 열정 넘치는 농인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수어와 관련된 문화 예술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분야가 다양한데요. 기본적으로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수어로 자신들의 삶과 꿈을 담아 기획하고 제작해요. 수어로 랩도 하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도 올려요. 댄스 퍼포먼스 활동도 계속해 왔고, 요즘은 단편영화도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을 ‘농인'이라고 부르나요?

청각 장애인들이 각각 다 들리는 정도나 언어 사용 능력이 다른데요. 이 중 90db 이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심도 난청이 있고,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는 분들을 농인이라고 부릅니다.


왜 ‘예술’을 핵심 키워드로 잡았나요?

핸드스피크를 저와 농인 아티스트 3명이 함께 만들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저희가 모두 너무 예술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노는 것도 참 좋아하고. (웃음) 더 들여다보면, 농인들의 문화 빈곤 문제가 깔려 있죠. 미디어나 콘텐츠는 계속 빠르게 발전해 가는데, 농인들이 사회 안에서 문화 예술 관련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요. 뭔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 열정, 끼가 가득한데 그저 누르며 살아야 합니다. 핸드스피크를 통해 분출하게 하고 싶었어요.


핸드스피크의 처음을 함께한 3명의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11년 전에 제가 비영리 공연회사의 공연기획팀에서 일할 때였는데, 춤을 너무 추고 싶다고 회사로 찾아왔어요. 당시 단장님이 연습실을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저에게 담당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인연이 시작됐어요. 


바로 연습실을 내줄 정도면 실력이 좋았나 봐요.

처음 이들의 춤을 보러 갔는데 충격이었어요. 정말 너무 못 추는 거예요. (웃음) 눈앞이 깜깜할 정도로요. 무턱대고 찾아올 정도의 각오와 열정이면 얼마나 잘 출까 기대했는데 반전이었죠. 그냥 동아리 수준으로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도 서로 그 회사를 나오고도 지금까지 11년이나 함께 해 오셨어요.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수어를 아예 못하니 글을 써서 소통했는데요. 춤이 너무 추고 싶다고, 무대에 꼭 서고 싶다고 써서 주는데 눈이 반짝반짝 빛나더라고요. 이 친구들이 여기서 저라는 사람을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거절이 있었을까, 그 와중에 또 얼마나 많은 차별과 상처를 경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춤은 정말 너무 못 추지만(웃음), 그래도 그냥 내가 힘들다고 그 손을 놓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손을 잡아주는 언니 딱 한 명 정도는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죠.
회사를 나와서는 이 친구들을 계속 응원할 수밖에 없었어요. 회사에서의 정식 연습은 그만뒀지만, 다들 포기를 안 했어요. 공장도 다니고 패스트푸드점 주방 일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춤은 연습실이 없으면 다리 밑에서라도 계속 추더라고요. 기회가 거의 없는데 그걸 계속 헤쳐 나가니까, 그걸 옆에서 계속 지켜보다 보니까, 응원할 수밖에 없어요.


현재 핸드스피크에는 어떤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나요?

실명을 말해도 괜찮죠? 이런 기회가 있으면 제가 꼭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거든요. (웃음)
우선 처음에 함께 시작한 지연, 혜진, 희화가 있어요. 지연은 저희 유튜브에도 영상이 많은데 수어 랩을 정말 잘하고 뮤지컬 연출도 하고 있어요. 희화는 춤을 너무 사랑하는 스트릿 댄서예요. 참고로 이 친구는 데프deaf 올림픽 태권도 국가대표 은메달리스트고요. 그리고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배우의 꿈을 꿔 오다 이제는 무대에도 서고 있는 혜진이 있어요. 혜진이 만들어주는 커피가 맛있길래 바리스타 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고 오더군요.
CGV에 자기 영화를 올리는 영화감독이 꿈인 승수는 작년에 단편영화를 만들었고요.
청인들 중 아나운서가 있는 것처럼 수어로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농통역사라는 게 있는데요. 지영우경은 농통역사이면서 배우의 자질도 있어요.
놀라운 속도로 연기가 성장하고 있는 서진.
영상 편집, 디자이너면서 연기도 하고 있는 다영.
늘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는 한호.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특수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무대도 오르는 태영.
늘 연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무대 위에선 빛이 나는 지수.
수어를 영상에 담는 앵글이 쉽지 않은데 점점 영상 전문가 포스가 나는 댄스 퍼포먼스팀 부단장 상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댄스 퍼포먼스팀에 가면서 더 활발해진 막내 하영. 이 친구는 육상 선수기도 했어요.
현재는 극단, 퍼포먼스, 영상미디어 예비합격자까지 더해 함께 모여 같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웃음)



왜 ‘회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2016년에 일본 국제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공연을 하러 갔어요. 다른 나라에서 온 팀들은 기업 후원도 다 붙어 있고 스태프들도 많았어요. 저희는 딱 넷이서 배낭 하나씩 메고 갔어요. 저희 연습이 계속 특별한 공지도 없이 뒤로 밀리더라고요. 저희가 동아리처럼 보여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다른 팀들은 실력이 정말 뛰어나서 저렇게 지원이 잘 되겠지 싶었죠.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섰는데, 저희 팀 공연 후에 가장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어요. 박수도 정말 많이 받았고요. 물론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는데, 그래도 실력차가 꽤 났어요. 연습량이 달랐으니까요. 그러면서 이게 절대 우리의 실력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실력 있고 열정 넘치는 친구들에게 왜 아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이건 사회의 문제구나 생각했죠. 적어도 실력에 걸맞은 기회와 대우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함께 회사를 만들게 됐어요. 


지원사업 선정되고 받는 교육도 넷이서 모두 함께 받으셨다고요. 대표님 혼자 받아도 됐을 텐데, 왜 그러셨나요?

지금은 제가 대표로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핸드스피크에서는 농인 대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야 했어요. 그런데 강의하는 분들은 시간이 급해서 말도 빨리 해야 하고 문자통역이나 수어 통역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자비 부담을 해서라도 함께 들었습니다. 기관에서 생각도 해 보지 못한 문제라 설득하는데도 노력이 많이 들었죠. 법인 교육도 따로 신청해서 8주를 함께 들었고요. 정관도 한 줄 한 줄 의미를 알아가며 썼어요. 농인들은 이런 경험을 하기도 어렵고, 해 본 사람에게서 전수받기도 어렵잖아요. 저희가 체질적으로 모두 공부랑은 안 맞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하게 겪어냈어요. 


최근에 청인 배우들과 함께 한 연극을 세종문화회관에 올려 호평을 받았습니다. 지연씨는 가수 키썸을 포함해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했고요. 앞으로도 다양한 콜라보가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협업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협업 상대 파트너의 마음이요. 간혹 이미지를 더 먼저 생각하거나 본인의 이익을 더 먼저 생각하며 접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청인들이 농인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열기 어렵듯이, 농인들도 청인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여는 것이 똑같이 어려워요. 많은 농인 청년들이 알바를 하거나 하는 과정에서 비장애인들로부터 상처 받는 경험을 합니다. 나쁜 어른들을 많이 만나는 거죠. 서로 좋은 친구라고 여길 수 있는 파트너를 선별하는 것이 저희에겐 가장 중요해요. 이미 마음이 검증된 분들과 함께 하려 합니다. 

연극의 경우 공연창작소 공간이라는 곳과 오래 협업해 오고 있어요. 배우들끼리는 단체 채팅방도 있고 일상적인 이야기나 농담도 자주 주고받아요. 청인 배우들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프로젝트죠. 소리로 합을 맞출 수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계속해 오는 데에는, 그들 역시 이 프로젝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수어로 만드는 콘텐츠는 왜 필요합니까?

해외 콘퍼런스에 갔을 때 한 번은, 100명의 농인들이 각국의 수어로 서로 대화하는 자리에 저 혼자 비장애인으로 있었어요. 그땐 수어를 거의 모를 때였고요. 아무에게도 말을 걸 수 없어서 멍하니 있는데 지연이 오더니 툭 치더라고요. ‘언니, 여기선 언니가 장애인 같아요.’ 하더라고요. 그 경험이 나중까지 잘 잊히지 않았어요. 비장애인으로서는 잘 겪지 못하는 순간이고, 농인들에겐 늘 겪는 일상이겠죠.
공연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청각장애인이나 농인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10% 정도가 있다고 해요. 그중 친구가 있느냐 물으면 0명이죠. 그저 ‘장애'로 바라봐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잘 떠올리지 못해요. 어쩌면 자주 보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어와 농인들을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콘텐츠들을 계속 기획하고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미래의 농인 아티스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저희 아티스트들에게도 늘 하는 이야기인데요.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세상과 타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핸드스피크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활동하고 있다면 언젠가 만나서 저희가 함께 무언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정윤님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클릭해서 팟캐스트로 들어보세요!

이 분이 이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왜 안 나오나 했던!)

‘들린다'라는 말의 의미, 좀 다를 수 있어요

수어를 하며 걸어가면 10분 거리가 1시간이 걸리기도 해요

여럿이서 하는 대화, 특히 어려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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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문화, 농인 아티스트들의 콘텐츠를 감상할 때 마음을 최대한 열어 본다.

핸드스피크 유튜브를 구독하고 영상에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단다.

핸드스피크 SNS에서 공연 일정을 확인하고 관람하러 간다.

핸드스피크와 협업을 원한다면 꼭 수어 통역이나 문자통역을 준비한다.



Interview 헤이리슨

Photo 어도러블 플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