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발달 장애? 특별한 디자이너들과 함께할 뿐

남장원 키뮤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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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으로 경계를 허무는 남장원님

작년에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라는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목에 의문, 사건이 모두 들어가니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 느낌이 나지만 그렇지는 않고요. 사건으로만 보면 아주 평이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흥미로운건 주인공 화자가 자폐증을 가진 열 다섯살 소년이기 때문인데요. 매일 다니던 길을 조금 벗어나 보는 것도 아주 큰 모험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그의 세계관이 참신했습니다. 종종 저의 뼈를 때리는 인사이트를 주기도 하고요.

이 책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는, 계속 읽을 지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자폐증'이라는 단어가 주는 뭔지 모를 생소함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 망설임이, 지하철에서나 길에서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마주칠 때 저의 시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겠죠. 그 시선들이 모여서, 한국을 ‘길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치기 어려운 나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번 주 헤이리슨에서는 디자인으로 경계를 허물어 가는 키뮤 스튜디오의 남장원 대표를 만났습니다. 발달 장애를 가진 디자이너 분들과 협업해 나가는 장원님의 이야기, 많이 듣고 읽어주세요!




키뮤 스튜디오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키뮤는 키덜트 뮤지엄의 약자예요. 저희가 발달 장애를 가진 6명의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일하고 있는데요. 몸은 성인이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감성을 가진 발달 장애인 친구들을 상징하는 단어로 키덜트를 썼어요. 이들의 그림을 뮤지엄처럼 담아내보자는 의미입니다. 


어떤 일들을 하나요?

디자인 스튜디오나 에이전시에서 하는 기본적인 일들을 합니다. 패키지 디자인,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 광고 등의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해요. 기업이나 단체에서 디자인을 의뢰 받아 개발해서 공급하는 거죠.


발달 장애를 가진 분의 그림을 처음 보고 원석 같았다고 하셨어요.

장애인 복지관에서 미술교육을 하게 됐을 때인데요. 미술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던 친구라 기대 없이 만났어요. 처음에 본 그림이 고양이 그림이었는데, 표정과 패턴이 너무 유니크하고 재밌었어요. 주변에 관련 전공 지인들에게 익명의 일러스트레이터라고만 하고 보여줬는데 다들 반응이 좋았어요. 다른 작품도 궁금해 했고요. 나만의 느낌은 아니구나 싶었죠.


키뮤의 큰 목표 중 하나가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고요. 경계는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나라에 놀러온 한 외국인이 이런 말을 했대요. ‘너네 나라엔 장애인이 없어? 유전자가 우월해?’ 당연히 유전자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만큼 장애인들이 알아서 잘 눈에 안 띄게 산다는 것의 반증이겠죠. 당장 저희만 해도 출퇴근하면서 거의 못 보니까요. 우리나라 인프라가 아주 나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복지, 의료, 사회시스템보다는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편견이나 인식의 문제겠죠. 그게 경계라고 생각해요.


‘발달 장애인 디자이너’라는 단어를 최대한 안 쓰고 싶으시다고요?


(목소리로 듣기) 키뮤의 시작과 맞물리는 이야기인데요. 저희 출발 자체가 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떠올린 것이 아니에요. 그저 원화가 너무 좋고 가치 있어서, 디자이너 대 디자이너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이 유니크하고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뭔가 멋진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이들이 그린 원화로만 대중이 우선 봐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산업의 변화에 따라 가장 먼저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일 텐데요. 키뮤는 장점에 주목했군요.

실제로 이들이 디자인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많은 원화를 그려줘요. 보통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소스를 직접 만들지는 않고, 다운로드 가능한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조합해서 쓰는데요. 발달 장애인 친구들에게 어떤 이미지나 시각자료들을 보여주면,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려내요. 기본적으로 관찰력이 뛰어나요. 요즘 특히 핸드드로잉은 드물다보니 더욱 희소성이 있는거죠.


복지 정책 차원에서 제안을 하신 적도 있다고요.


(목소리로 듣기) 지금은 잉여의 일자리에 발달 장애인들이나 취약계층들이 교육을 통해 맞춰가는 구조죠. 산업이 변화하면서 점차 일자리의 종류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거꾸로, 그들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일자리를 기획해보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만 봐도 전혀 없던 직종이잖아요. 저희가 발달 장애인 친구들이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검증하는데 거의 10년이 걸렸어요. 정부 예산으로 다양한 연구나 프로젝트가 선행되면, 저희 같은 팀들도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 가진 친구들에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재능들이 있다는 확신이 저는 있거든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입시미술을 가르친 적이 있으시다고요.

대학 때 전공보다 미술학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게 더 좋았어요. 미술 교육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할 때고요. 학교를 조금씩 안나가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전업처럼 했죠. (웃음)


그러다 복지관에서 발달 장애 친구들의 미술교육을 하셨습니다. 많이 다르던가요?

많이 달랐죠. 그 전엔 아주 어린 친구들을 가르쳐 본 적도 없었고, 당연히 발달 장애 친구들도 처음이었고요. 가장 다른 건, 학생들의 경우는 실력을 길러서 대학을 보내는 것이 목표인데요. 발달 장애인들은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에요. 처음엔 그냥 즐겁게 꾸준히 하게 하고, 점차 원래 본인이 갖고 있던 재능을 살려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 가는 개념이죠.


장점에 집중한다는 점이 특히 다르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입시 미술의 경우는 못하는 것을 보완해서 평균을 맞춰서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 목표잖아요. 발달 장애 친구들의 경우는 장점을 갖고 무엇을 어떻게 재미있게 시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가르치는 것을 넘어 창업까지 이어졌어요. 초반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가장 고민을 많이 한 것은 이들과 함께 일하는 체계와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작업의 기복이 매우 심한 친구도 있고, 종합적으로 재능이 있는 친구도 있지만 색이나 드로잉 하나만 집중적으로 잘하는 친구도 있고 하다보니, 어떻게 안정적인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 지 고민이 컸죠.


지금은 어떻게 체계를 잡았나요?

첫 번째는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하나의 아트웍을 함께 만드는 협업 시스템이에요. 각자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어 앞으로의 고용 확대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봤어요. 두 번째는 그 동안 모아 놓은 아카이브의 활용입니다. 지금까지 다듬어서 바로 활용 가능한 벡터 소스로 모아 둔 것이 1,000점 정도 돼요. 클라이언트 의뢰가 들어오면 바로 그리는 작업물과 아카이브를 조합해서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 수 있어요.


아주 친한 친구가 장애를 가진 분이셨다고요.

누나들이 친구라 태어나면서부터 친구였어요. 다리를 아예 쓸 수 없는 소아마비를 가진 친구인데 초중고 다 일반학교에 다녔어요. 휠체어는 한 번도 안 타고 스틱을 활용해서요. 아마 이 친구와 함께 학교 다녔던 친구들은 한 번도 이 친구를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 본 적이 없을 거예요. 저희 회사 초기 투자자이기도 한데요. (웃음) 지금도 미국으로 전시를 가면 이 친구가 차로 픽업을 나와서 태우고 다녀줘요. 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할 때도 자동차로 횡단 여행하듯이 갔대요. 수영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와 미국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다르다던가요?

아무래도 미국이 살기 편하다고 해요. 어도비라는 회사를 다니는데, 전혀 불편한 시선이 없대요. 이 친구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갔는데, 그 때도 일화가 있어요. 진학하려던 고등학교에서 실제 이 친구 장애 정도를 보고 입학을 취소시켰는데, 인권 협회에 얘기하고 학교와 상의하고 나서 그 학교 전체의 장애인 시설을 다 바꿨대요. 캠퍼스가 거의 서울대만한 곳인데. 미국 복지 환경이 좋다고는 볼 수 없죠. 의료 보험만 봐도 그렇고. 그럼에도 한국에서 온 장애 학생 한 명을 위해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5년 안에 이루고 싶은것이 있나요?


(목소리로 듣기) 저희가 스타트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업적인 성장이 가장 크죠. 난민이나 아동 등 사회문제들을 대중들에게 잘 알릴 수 있는 아트웍 프로젝트를 NGO나 사회단체들과 준비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회문제를 유니크하면서도 대중적인 시점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작업들을 잘 해 나가고 싶어요. 내년 안에 10-20명까지 고용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Interview 헤이리슨

Photo 어도러블 스튜디오, 키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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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Hey Listen. | letter@heygr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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